1. 세 정의관의 이론적 문제 및 한계성과 긍정성 및 탁월성
롤즈는 공리주의를 전체주의 이념이라고 비판한다. 공리주의는 사회전체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롤즈가 말한 2원칙을 위하여 1원칙을 훼손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1원칙에서 언급한 모든 시민들이 누려야 할 시민권은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2원칙의 차등원칙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공리주의의 사회적 효율성은 평등원칙을 상실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반면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롤즈의 문제의식은 여러 가지 점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첫째로, 단계론적인 사고이다. 1원칙은 정치적인 영역의 문제이고 2원칙은 경제적인 영역의 문제인데 이러한 단계적인 사고는 오히려 사회를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 공리주의는 처음부터 19세기 자본주의가 사익을 극대화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롤즈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상황 속에서 경제적인 분배의 확대를 고민하였기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두 번째 비판인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점이 제기된다. 셋째는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의 문제인데, 공리주의는 인간을 쾌락적인 존재로 보지만 롤즈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총체적으로 보는가, 단계적으로 보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존 롤즈의 자유주의관은 자유지상주의자들로부터는 자신의 생산물을 점유할 자유를 제외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반대로 사회주의자들로부터는 롤즈가 생활수단인 소유문제를 원칙이 아니라 경험의 영역에 넘겨주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자유지상주의자 입장에서는 선천적 능력이나 자질을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해 개인의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 롤즈의 주장에 반대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선천적 능력이나 자질을 개인의 배타적 권리로 인정한다. 즉 타고난 육체적·정신적 능력도 바로 그 개개인의 소유물이라는 것이다. 롤즈는 차등의 원칙으로 빈부 격차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은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본다. 경제 분야에서 발생한 빈부 격차로 인해 정치 분야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자유권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롤즈의 주장에서 보이는 다소 비현실적인 면은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은 굳이 원초적인 입장인 무지의 베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의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는 무지의 베일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롤즈 식 원초적 입장은 상대적으로 비현실적이다. 마지막으로 롤즈는 최소극대화의 원칙을 바탕으로 차등의 원칙을 도출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최소극대화 원칙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최악의 경우를 먼저 피해 플랜B를 강구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최선의 경우를 먼저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화투·카드·카지노처럼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기가 돈을 버는 최선의 경우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를 우선 배려하는 차등의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소극대화 원칙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에 근거하기보다는 존 롤즈가 지지하는 특정한 심리학·신앙심에 근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노직의 자유주의적 정의관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받는다. 첫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결과가 공정하다고 했지만 자신의 능력이 과연 존재하느냐의 문제이다. 재능 있는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얻은 것은 자신의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시대적 배경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온전히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의한 결과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그를 둘러싼 다수의 사람들의 희생과 공헌이 기여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주로 벤담의 공리주의자들이 주로 제시한다.
둘째, 설사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의한 결과라도 그것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이다. 만약 개개인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결과를 전적으로 인정하다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개개인의 자유에 의한 것이라도 칸트(Immanuel Kant)에 의하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행위를 요청하는 타율적인 ‘가언 명령‘이 아니라 목적 자체를 위해 행위가 요청되는 자율적인 ’정언 명령‘이 되어야 한다.
2. 세 정의관이 한국 민주정치의 현실에 주는 실천적 함의
복지문제에서 정의는 항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과연 복지를 실천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비용을 부담하고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소득층의 비용부담으로 저소득층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여 사회 전체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옳은지는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다. 한창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무상급식 전면실시 논란이 그러한 사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전면적으로 실시된 무상급식은 말 그대로 학생들의 급식을 정부가 지원하여 모든 학생이 무료로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여 복지를 실현하는 하나의 정책이었다. 저소득층 입장에서 마냥 좋을 것 같은 이러한 제도가 아직까지도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질과 양 모두 형편없는 수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전면실시를 통해 정부의 부담은 급격히 심화되었고 이러한 부담을 줄이고자 질과 양은 현저히 떨어졌던 것이다. 이에 학부모들은 차라리 사비를 들여 질 높은 식사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비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한다. 과연 이렇게 전면무상급식이 사회의 정의가 실현됐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더 나아가 과연 이러한 질과 양 문제를 떠나서 형평적 효율적 차원에서 고려했을 때는 또 어떠할지도 의문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는 ‘노블레스오블리주’ 문제가 있다. 노블레스오블리주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몇 해 전 ‘땅콩회항’사건으로 ‘노블레스오블리주‘라는 단어가 큰 관심을 끌었었다. 우리나라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하면 자주 회자되는 것은 조선시대 경주 최 부잣집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경주 최 부잣집은 며느리들에게 시집온 후 3년간은 무명옷만 입을 것을 가훈으로 삼을 만큼 검소를 실천하였지만, 수입의 1/3은 빈민구제에 썼으며 일제 감정기 때는 재산을 독립운동자금으로, 해방 후에는 전 재산을 교육을 위해 투척하여 대표적인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회자되곤 한다. 이런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공공정신,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는 과거부터 사회적 정의실현의 한 방향으로 계속되어온 것을 볼 수 있다.
정치세계는 자유, 평등, 복지, 유대, 개인성, 집단정체성, 민주적 정당성, 시민윤리, 리더십 등 다양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열망과 가치들을 내포한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특히나 더 이념대립이 심각하다. 이러한 가치들의 완전한 조화와 실현을 보장하는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정치는 상충하는 가치와 요구들 간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정치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균형의 정치’가 가장 바람직한 기본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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