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삶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의 기원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18세기 중반 유럽에서의 산업혁명에 따른 일련의 변화들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사건들은 오래된 전통적인 삶의 방식들을 파괴했고, 사회학의 창시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급진적 변화들이 발생했는지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들은 또한 통상의 종교적 믿음에 도전하는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사회와 자연 세계를 보는 방식들을 발전시켰다.
1.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
오귀스트 콩트는 1840년대에 '사회학(Sociology)'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콩트는 새로운 분야를 서술하기 위해 원래 '사회물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당대의 그의 지적 라이벌들도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콩트는 그의 견해를 다른 저술가들의 견해와 구별하기 원했고, 그래서 '사회학'이라는 명칭을 고안해 냈다.
콩트의 사상은 당시의 험난냈던 사건들을 반영한다. 콩트는 자연과학이 물리적 세계의 법칙을 발견하듯이 사회적 세계의 법칙을 발견하는 사회과학을 창조하려고 했다. 콩트는 각각의 분과 과학들은 고유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유사한 논리와 과학적 방법이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고 인류 복지를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사회학에 대한 콩트의 이 같은 비전은 바로 사회학이 실증주의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학이 물리학자들이나 화학자들이 물리적 세계를 연구할 때 사용하는 엄격한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기를 원했다. 과학은 오직 경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관찰 가능한 실체만을 연구해야 한다며 실증주의를 주장한다. 신중한 관찰에 기반을 두고 우리는 관찰된 현상들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을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사건들 간의 인과관계를 이해함으로써 과학자들은 미래의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 사회학에 대한 실증주의적 접근은 관찰과 비교, 실험에서 나오는 경험적 증거들에 바탕을 둔 사회에 대한 지식 생산을 추구한다.
콩트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세 단계(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주의적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신학적 단계에서는 사회가 신의 의지의 표현이라는 신념과 종교적 관념들이 인간의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형이상학적 단계에서는 사회를 초자연적인 측면이 아닌 자연적 측면으로 보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그리고 뉴턴의 발전적 성과에 의해 출현한 실증주의적 단계에서는 사회에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장려되었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콩트는 사회학이야말로 마지막으로 발전하는, 또한 모든 과학 중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콩트는 산업화 때문에 불평등이 생겨나고, 그것이 사회 통합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불평등 유형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규제하고 통합시켜 줄 도덕적 합의를 새로운 '인문성의 종교'를 통해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재건에 대한 콩트의 견해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사회에 대한 과학을 창시하는 데 기여한 그의 공로는 이후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의 전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2.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
에밀 뒤르켐의 저술은 콩트의 저작보다 더 지속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뒤르켐은 사회학이야말로 전통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현실 세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필요로 하는 사회학적인 질문으로 바꾸는 새로운 과학이라고 보았다. 그는 사회학이 과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하는 것과 같은 동일한 객관성을 지니고 사회제도에 대한 분석을 추구해야 한다고주장했다. 그는 이것을 '사회적 사실로서 연구하라'고 요약했다. 이는 사회제도들이 자연계에서의 물질들처럼 엄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단단한 객체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사회적 사실은 무엇인가?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들이 인간 행위를 제약하거나 이끄는 제도들이나 행위의 규칙들 모두라고 설명한다. 개인에게 사회적 사실들은 외부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대부분의 시간에서 그들은 그것들을 인생의 자연적이고 통상적인 부분들이라고 당연시한다. 예를 들어 통화 체계는 우리가 거의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적 사실이다. 차나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데, 우리가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높은 리스크를 지거나 돈을 빌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통화 체계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잇었던 것이고, 사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용하도록 강요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규칙들에 종속적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체계는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이끌어낸다. 사회적 사실들은 개인과 상관없이 존재하고 행동을 이끈다.
뒤르켐의 자살률 분석에서 그는 사회적 사실 개념을 왜 어떤 국가는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자살률을 갖는지 설명하는데 사용했다. 자살은 순전히 개인적인 행위, 즉 고도의 행복하지 못함과 깊은 우울의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뒤르켐은 종교, 결혼, 이론, 사회적 계급 같은 사회적 사실들이 모두 자살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국가들 간에 규칙적인 패턴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패턴들은 심리학적 방식이 아닌 사회학적 방식으로 설명되어야만 한다.
뒤르켐은 그가 살던 시대의 사회 변화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특히 사회를 결속시키고 무질서에 빠지지 않게 하는 사회적-도덕적 연대에 관심을 가졌다. 연대는 개인이 사회 집단에 성공적으로 통합되고 일련의 공유된 가치와 관습에 의해 규제될 때 유지될 수 있다. '사회 분업론'에서 뒤르켐은 산업시대의 도래로 새로운 형태의 연대가 출연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뒤르켐에 의하면 낮은 노동 분업 상태에서의 전통적인 문화는 기계적인연대로 특정지을 수 있다.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유사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공통의 경험과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근대 산업의 발전과 도시의 확장은 기계적 연대를 해체할 분업의 증가를 만들었다. 역할과 직무에서 전문화의 증대는 유기적 연대라는 새로운 종류의 연대를 만들었따. 노동 분업이 확장됨에 따라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공급하는 재화와 용역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서로 의존하게 된다. 인간의 신체가 유기적인 것처럼 각각의 기관은 사회 전체 혹은 신체가 잘 작동하기 위해 서로 의존한다.
그러나 뒤르켐은 근대사회의 변화 과정이 너무 빠르고 강력하기 때문에 주요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생활방식과 도덕, 믿음, 행위의 패턴들도 변한다. 그런데 변화가 빠르고 지속적이면 새로운 것들이 확립되기 전에 오래된 가치관들은 사람들에게서 영향력을 상실한다. 뒤르켐은 이러한 불안정한 상태를 아노미(anomie)라 지칭했다. 아노미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이 의미와 구조가 결여되었음을 인식하면서 느끼는 목표 없음, 근심, 절망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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