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

[북리뷰]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by EYAEYAO 2025. 6. 17.
반응형

1. 한 지식인과 한 인간이 만나는 여정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젊은 지식인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책과 철학에 몰두해 살아왔다. 어느 날 그는 석탄 광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크레타섬으로 향한다. 이는 단지 사업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삶을 행동으로 경험해보겠다'는 그의 내면적 결단의 산물이기도 하다. 항구에서 그는 알렉시스 조르바라는 인물을 만난다. 나이 든 노동자인 조르바는 자신을 고용해 달라며 거리낌 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고, 삶의 기쁨과 슬픔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나'는 조르바의 생기와 자유로운 기질에 호기심을 느끼고 함께 크레타로 떠난다.

크레타 섬에 도착한 두 사람은 광산을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마담 오르탕스라는 프랑스 출신의 늙은 무희를 만나게 된다. 마담은 외로움과 과거의 향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조르바와는 짦은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 이 외에도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 불신, 편견 등이 작품 속에서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특히 젊은 과부가 한 청년과의 연애 사실이 발각되어 마을 남성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살해되는 장면은 공동체의 폭력성과 여성에 대한 억압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만 본다. 그는 윤리적으로 분노하지만, 조르마처럼 행동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이후 조르바는 광산의 케이블 장치를 설치하며 사업의 확장을 시도하지만, 장치는 작동 첫날 무너지고 만다. 마침 마담 오르탕스가 병으로 사망하고, '나'는 사업의 실패와 함께 섬을 떠날 결정을 내린다. 떠나는 날, 조르바는 담담하게 말한다. "우린 실패했소. 하지만 잘 살았소." 그 마지막 순간 조르바는 그에게 춤을 추자고 제안한다. 망설이난 '나'는 결국 그의 앞에서 춤을 추며 웃는다. 그것은 사업의 실패도, 마을의 폭력도, 죽음의 그림자도 초월하는 삶 자체에 대한 긍정의 몸짓이었다.

"인생이 두렵거든 춤을 추시오.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오."

 

이 여정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조르바와의 시간은 '나'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이후에도 그는 조르바를 떠올리며 삶의 본질을 되새긴다.

 

2.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를 살아 낸 인간

이 소설의 중심에는 줄거리보다 인물이 있다. 조르바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삶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인간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과 욕망, 고통과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계산하거나 예비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살며, 실패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르바는 인간이 가진 자유의 가능성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자유란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사랑하고, 분노하고, 울고, 먹고, 마시고, 그리고 춤추는 일상적 행위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당신은 머리로만 사는군요. 가슴과 배, 두 다리도 있는데 왜 그것들을 놀리는 거요?"

 

반면, '나'는 자기 안에 갇힌 인물이다. 그는 책으로 삶을 설명하고, 감정보다 논리와 도덕을 앞세운다. 조르바와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나'는 점차 변화한다. 그는 조르바를 단순한 친구 이상으로 인식하며, 조르바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 속에서 자신이 그간 놓치고 있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조르바는 어떤 의미에서 '나'의 억압된 자아이기도 하다. 자기 안에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생의 충동, 욕망, 감정들. 그는 조르바를 통해 그것들과 화해하고, 조심스럽게 삶의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3. 실패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용기

'그리스인 조르바'는 결과 중심적 사회, 성공에 중독된 인간들에게 말한다. 이 책의 결말은 전형적인 성공담이 아니다. 사업은 실패했고, 사람은 죽고, 떠나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실패 위에서 조르바는 웃고 춤춘다. 그는 말한다. "이제 끝났소. 그러니 춤을 춥시다." 

그의 춤은 위로도 아니고 반항도 아니다. 그것은 삶이 고통스러워도 살아야 한다는 태도이며, 실패해도 존엄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조르바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나무, 여자, 빵, 음악, 바람, 광산, 그리고 사람들. 그는 살아 있는 것을 진심으로 대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죽음은 생의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슬퍼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춤을 춘다. '나'는 그 춤에 동참하며 마침내 책으로는 배울 수 없었던 '삶을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다. 

반응형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리뷰] 손원평 - 아몬드  (1) 2025.06.18
[북리뷰] 헤르만 헤세 - 데미안  (1) 2025.06.15
[북리뷰] 프란츠 카프카 - 변신  (2) 2025.06.14
[북리뷰] 한강 - 채식주의자  (0) 2025.06.14
[북리뷰] 이상 - 날개  (6) 202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