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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북리뷰] 손원평 - 아몬드

by EYAEYAO 202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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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알지 못하는 소년의 성장기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편도체가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 선천성 감정 인식 불능증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그는 공포나 분노, 슬픔 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는 사회와의 충돌을 피하게 하기 위해 윤재에게 감정을 학습시키고자 한다. 예를 들어, 상황별로 어떻게 표정 지어야 하는지를 카드로 가르치고, 반복 훈련을 통해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윤재의 세계는 일정하고 조용하다. 친구도 없고, 감정에 휘둘리는 일도 없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중고 서점 '이모저모'가 그의 세계의 전부이다. 윤재는 세상의 기대에 맞춰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삶은 어느 날 완전히 무너진다. 크리스마스이브, 자신의 눈앞에서 외할머니가 폭행을 당해 돌아가시고, 뒤이어 어머니마저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다. 윤재는 감정이 없는 채로 그 비극을 목도한다. 그는 울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를 '이상한 아이'라며 점점 멀리한다.

그 무렵, 같은 반에 있는 소년 '곤이'가 등장한다. 곤이는 윤재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아이, 폭력으로 세상을 밀어내는 아이이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충돌하지만, 곧 서로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발견하고 가까워 진다. 윤재는 곤이를 통해 감정의 진짜 의미를, 곤이는 윤재를 통해 통제라는 이름의 균형을 배운다. 이 관계는 평범한 우정이라기보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생존의 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감정이라는 것이 단순히 '느끼는 능력'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재는 어머니 없이 홀로 살아가며 점차 변해간다. 처음에는 모방에 불과했던 감정 표현이 곤이와의 교류, 사건의 재해석, 그리고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 조금씩 '자신의 감정'으로 변한다. 윤재는 병원에 누워 있던 어머니에게 감정을 담아 말을 건넨다.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엄마, 나 여기 있어요. 나 괜찮아요." 이 말은 윤재가 '정상'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감정이란?

[아몬드]는 감정을 '갖지 못한 자'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감정이 '과잉된 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윤재는 감정이 결핍된 채 태어났고, 곤이는 감정에 눌려 살아간다. 이 둘은 결국 감정이라는 것이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조율되어야 하는 능력임을 보여준다. 윤재는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을 통해 '정상인처럼' 행동하지만, 그는 자기감정을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반면 곤이는 세상의 폭력과 결핍에 감정이 무장 해제된 채 반응한다. 그는 폭력으로 말하고, 침묵으로 저항한다.

"사람들이 내게 화를 내라고 했다. 우울해 하라고도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윤재의 이 고백은 그가 단순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보여주지 못해 낙인찍혔음을 의미한다. 결국 감정을 생물학적 반응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석되는 언어이다. 윤재와 곤이의 우정은 일종의 공동 진화라고 볼 수 있다. 서로에게 적대적이었던 둘은 서로를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해 간다. 감정은 이들에게 있어서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표현하는 능력의 문제이며 그 과정이 곧 성장이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아몬드]는 정상성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질문을 던진다. 윤재는 감정이 결핍되어 있다는 이유로, 곤이는 과잉이라는 이유로 사회의 경계선 바깥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들은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모두 살고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인 감정 표현을 요구하는지, 그 요구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얼마나 쉽게 비정상으로 분류하는지를 지적한다. 윤재는 '로봇 같다'는 말을 듣고, 곤이는 '문제아'로 불린다. 이 사회에서 감정은 규격화된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윤재가 어머니를 향해 "나 괜찮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감정의 회복이자, 언어화된 공감의 순간이다. 그 말은 어머니를 위한 위로이면서도, 자신을 향한 선언이기도 하다.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소년은 타인의 고통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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