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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북리뷰] 밀란 쿤데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EYAEYAO 202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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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 두 개의 축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의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네 인물의 삶을 따라간다. 사랑과 자유, 우연과 필연의 경계에서 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모색한다. 주인공 토마시는 프라하에서 활동하는 외과의사로,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어떤 관계에도 무게를 두지 않으려 한다. 그는 "삶은 단 한 번 뿐이며, 반복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시골 호텔에서 일하던 테레사를 만나고, 그의 삶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테레사는 지적이며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로 토마시에게 끌림을 느끼고 프라하로 그를 찾아간다. 토마시는 그녀를 받아들이고 결혼하지만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를 끊지는 않는다. 테레사는 토마시를 사랑하지만 그의 일관되지 않은 태도에 번번이 상처를 받는다.

사비나는 화가이자 토마시의 옛 연인이다. 그녀는 예술과 삶에서 '배신'을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전통과 도덕으로부터 끊임없이 이탈하려 한다. 그녀의 자유는 일관되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공허함을 갖고 있다. 프란츠는 사비나의 연인으로 철학 교수이자 이상주의자다. 그는 정의를 믿지만 실제 삶의 무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갈등한다. 

사비나는 체코를 떠나 서유럽, 그리고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녀는 프라하를 떠나면서도 그곳에 남겨진 것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자유를 쫓으며 살아가지만 관계를 회피하고 떠나는 선택은 결국 내면의 고독과 공허로 이어진다. 프란츠와의 관계에서도 그녀는 정착을 거부하고 혼자 떠난다. 미국의 어느 노부부 집에 세들어 살아가는 말년의 사비나는 고요하지만 뿌리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는 삶을 이어간다.

"자유를 택했지만, 자유는 그녀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편, 토마시는 파라하에서 반체제적 서명 사건에 연루되어 직업을 잃는다. 자유를 상징하던 프라하의 공간에서 밀려난 토마시와 테레사는 시골로 내려간다. 그는 더 이상 외과의사가 아닌 수의사로 일하고, 테레사는 사진 대신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그들의 삶은 단조로워졌지만 어느 순간 그 안에서 평온이 싹튼다. 이전의 복잡했던 감정들과 상황들이 소거되고 잔잔한 일상만이 남는다. 그러나 토마시와 테레사는 자동차 사고로 함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작가는 그 죽음을 드러내지 않고 직전의 '평화로운 하루'를 묘사하며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조용히 상기시킨다. 그로 인해 그 마지막은 비극적이지만 고요한 정적에 가까웠다.

 

삶을 어떻게 견디는가

작가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차용해 삶의 반복 가능성과 의미를 묻는다. 모든 일이 단 한 번만 일어난다면 그것은 얼마나 가벼운가? 그리고 그런 삶은 진정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토마시는 관계를 가볍게 여기려 하지만 테레사와 함께하는 삶에서 반복적으로 감정의 무게를 마주한다. 그는 회상한다.

"테레사를 사랑한 것은 내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가 도망치려 했던 무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삶의 흔적이었다. 테레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감정과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쉽지 않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한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에 사비나는 다르다. 그녀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떠나고, 연결을 끊는다. 자유를 쫓는 그 방황은 강인한 듯 보이지만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남는다. 삶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 없는 양극 사이에서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균형을 찾아간다.

 

해석할 수 없는 감정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정치적 현실과 철학적 성찰, 개인의 감정과 윤리적 딜레미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선택을 단정하지 않고, 그들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시도'를 포착한다. 소란스러운 도시를 떠나 조용한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토마시와 테레사는 의사와 사진작가로서의 그들의 정체성을 벗고 조용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단순한 일상 속에서 오히려 인간다운 감정이 살아난다. 

"이제 그는 알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 삶의 가장 조용한 무게가 숨어 있다는 것을."

 

사랑, 신념, 도피, 책임. 네 인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충돌하고, 또 자신과 화해하거나 거리를 둔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제시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무거운 질문을 던지지만 그것을 가볍게 이야기한다. 삶을 무겁게 살아야 할 이유도, 가볍게 살아야 할 이유도 단정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통해 그 경계 위에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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