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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ology

교육과 사회학 이론

by EYAEYAO 202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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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화로서의 교육

에밀 뒤르켐은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는 가치를 이해하기 때문에 교육이 아이들을 사회화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개인을 결속시키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는 가치란 종교적·도덕적 신념, 자기 규율 감각을 포함한다. 뒤르켐은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를 유지시키는 사회적 규칙들을 내면화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공유된 도덕적 가치에 특별히 관심을 둔 것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사회 연대를 위협하는 개인주의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공동선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을 학교의 핵심 역할이라 보았으며, 또한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규율과 권위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뒤르켐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산업사회에서 교육은 또 다른 사회화 기능을 수행한다. 교육은 점차로 전문화되는 직업 세계에서 개인이 직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친다. 전통 사회에서는 가정 안에서 직업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 분업의 확대로 사회가 더 복잡해지면서 전문화된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전수해 주는 교육체제가 발전했다.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활동한 탈콧 파슨스는 교육에 대한 또 다른 구조 기능주의적 접근을 보여준다. 뒤르켐과 달리 증가하는 개인주의는 파슨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신에 파슨스는 교육의 핵심 기능이 학생들에게 개인적 성취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성취라는 가치는 산업사회가 작동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하지만, 가족 안에서는 이를 배우기 어려웠다. 가족 내에서 아이의 지위는 이미 태어나면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교에서 아이의 지위는 많은 경우 성취된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과 같이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된다. 파슨스에게 교육의 주요한 기능이란 아이들이 가족 안에서 통용되는 특수한 기준을 넘어 근대사회에서 작동하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파슨스에 따르면 학교는 더 큰 사회에서 그렇듯이 많은 부분 능력 위주의 기준에 의해 유지된다. 어린이들은 젠더, 인종 혹은 계급이 아닌 자신들의 능력에 의해 지위를 성취한다. 하지만 학교가 능력 위주의 원칙에 의해 작동한다는 파슨스의 관점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기능주의적 이론이 교육 체제에 대해 중요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교육은 개인이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학교는 아이들에게 더 큰 사회의 가치와 도덕을 가르친다. 그러나 기능주의 이론은 한 사회의 통합된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한 사회 안에서도 여러 종류의 문화적 차이가 있으며,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하는 핵심적이 가치들이 있다는 생각은 틀렸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는 기능주의 설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로, '사회'라는 개념 자체에서 기인한다. 기능주의자들은 교육 체제가 사회 전체를 위해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를 비교적 동질적이며, 모든 사회 집단이 비슷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갈등론적 전통에서 있는 사회학자들은 불평등으로 얼룩진 사회에서 교육체제가 기존 사회를 지지하고 불평등을 강화환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학교 교육은 사회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를 위해 종사하는 것이다.

 

2. 자본주의를 위한 학교 교육

미국의 볼스와 긴티스는 학교가 자본주의 기업에 적합한 종류의 노동자들을 생산하는 것을 돕는다는 이유만으로도 학교는 사회화를 수행하는 '대리인'이라고 결론 내린다.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쓴 논문에서 이들은 생산 영역과 교육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문제는 단순히 학교 교과 과정이 고용주가 원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교육 체제는 인격을 총체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돕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교육에서의 사회관계 구조는 학생들이 작업장의 규율을 익히게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태도 유형, 자기 표현 방식, 자신에 대한 이미지, 사회계급 식별 능력과 같이 직업에 알맞은 인재가 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들을 계발시킨다. 특히 교장과 교사, 교사와 학생, 또 학생과 학생 등의 사회적 관계는 노동의 위계적 분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볼킨스와 긴티스는 학교 교육의 구조가 '대응 원리'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즉 학교생활의 구조는 직장생활의 구조와 대응한다. 학교와 직장 모두 규칙에 순응하면서 보상을 제공한다. 교사와 관리자는 업무를 지시하고, 학생과 노동자는 임무를 수행하며 교직원은 기업 경영처럼 위계적으로 직되어 있다. 이런 식의 배열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볼스와 긴티스의 이론은 교육은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모든 계급에 기회의 문을 열어 주는 '차별 없는 것'이라는 당시의 상식에 도전했다. 볼스와 긴티스가 말하길 자본주의하에서 교육은 사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커다란 분리대다.

전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이 이론은 어떤 면에서는 '갈등 기능주의'적인 사고를 대표한다. 이 사고에 따르면 교육 체제는 갈등으로 점철된 사회 안에서 불평등이 지속하도록 돕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대응 원리 가설이 너무 단순하고, 환원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다른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도 있다. 대응 원리 이론은 개인을 형성하고 결정하는 사회 구조에 기댈 뿐,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저항할 가능성은 충분히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한 예다. 볼스와 긴티스의 연구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이 연구가 지나치게 일반화된 것인데다, 학교 내에서 이루어진 경험적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후의 연구자들은 학교 안에서 실제로는 대응 원리 이론이 가정한 것보다 더 다양한 행위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학교에서 교장과 교사가 노동자 계급의 학생들이 더 야망을 품을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날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고용주들이 학교가 그들이 원하는 기술과 지식을 갖춘 노동자를 생산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3. 숨겨진 교과 과정

볼스와 긴티스는 단순히 학교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구조에 주목하면서, 교육 체제 내에 규율, 위계, 현재 상태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가르치는 숨겨진 교과과정이 존재함을 보였다. 숨겨진 교과 과정을 탐구한 학자 중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이론가 중 한 명은 오스트리아의 무정부주의자이자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다. 그는 산업 자본주의 문화에 완고히 반대한다. 그가 보기에 산업 자본주의 문화는 사람들을 점차 탈숙련화하고 그 결과 사람들을 점점 더 기업의 상품에 의존하게 되는 한편 자신의 창의성과 지식에 덜 의존하게 된다. 예를 들어 관료적 의료 체계에서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약이나 치료법 대신 의사와 병원에 의존한다. 이러한 경향을 교육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반복된다.

일리치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의무 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스와 긴티스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교육과 경제적 요구 사이의 관계를 강조했다. 일리치에 따르면 학교는 네 가지 기본 업무를 수행하도록 발전해 왔다. 보호, 직업 역할의 분배, 사회의 지배적 가치의 학습, 사회에서 승인된 기술 및 지식의 습득이 그것이다. 학교는 마치 감옥처럼 구금 기관이 되었는데, 출석을 의무화함으로써 젊은이들을 유년 시절부터 일하기 전까지 '길에서 쫓아냈기' 때문이다.

학교는 정규 교과 내용이 아닌 것들도 상당히 많이 가르친다. 학교는 규율과 통제를 통해 일리치가 명명한 '수동적 소비'를 주입한다. 학교는 이러한 '교과목'들을 드러내 놓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학교 교과 과정과 조직에 암묵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숨겨진 교과 과정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이란 '자기 위치를 알고 거기에 머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일리치는 사회의 탈학교화를 주장한다. 의무 교육이 상대적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발명품임을 지적하며 그는 의무 교육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 어떤 근거도 없다고 말한다. 학교가 불평등을 개선하거나 개인의 창의력을 발달시키지 않는데도, 왜 현행 의무 교육 체제를 폐지하지 않는가? 일리치가 모든 형태의 교육 조직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고자 한다면 단지 유년기나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항상 그리고 누구나 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체제에서야말로 지식이 전문가의 전유물로 남지 않고 널리 확산될 것이며, 학습자는 표준 교과 과정에 굴복할 필요 없이,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개인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일리치는 학교를 대체할 만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의 학습 설계를 제안했다. 예를 들면 정규 학습을 위한 물질적 자원은 도서관이나 대여 업체, 실험실, 지식 저장 은행 등에 두고, 학습자라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의사소통 연결망'을 구축하여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자료나, 타인을 훈련시키길 원하거나 상호 학습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학생들에게 바우처를 지급해 그들이 원할 때에 교육 서비스를 받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제안들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미래에 유급 노동이 크게 줄거나 재구조화된다면 이러한 제안은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심지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 될 것이다. 만일 유급 노동이 사회적 삶에서 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데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해 보면 일리치의 몇 가지 아이디어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교육은 단순히 인생의 전반부에 전문 기관에서 받는 형태가 아니라, 교육을 받고자 하는 모두에게 개방될 것이다. 1970년대에 제기되었던 그의 아이디어는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의 출현과 '평생교육'이라는 개념과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30년간 교직 생활을 하고 퇴임한 존 테일러 개토는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출발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개토는 미국의 숨겨진 교과 과정이 일곱 가치 기초적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숨겨진 교과 과정은 다양한 과목에 임의로 섞여 있으며, 진정한 지식과 이해보다는 혼동을 야기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계급 위계에서 자기의 위치를 알며, 더 좋은 것들을 유예하라고 가르친다. 수업 시작과 끝에 울리는 학교 종은 무관심을 가르친다. 이를테면 어떤 공부도 학교 종이 울린 후에도 계속할 정도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지를 말해 주는 선생님 같은 권위적인 형상에 감정적으로, 지적으로 의존하도록 교육받는다. 또한 학생들은 자존심이 일시적인 것임을 배운다. 자존심은 수많은 시험과 성적에 기초해 선생님이 내린 평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학교는 숙제를 통해 학교에서 지켜야 하는 규율이 집으로도 이어지게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늘 감시 아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친다. 개토는 미국의 의무 교육 체제가 '모든 이의 의무적인 종속'을 유발하지만 이를 '구조적으로 개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대신에 그는 부모와 다른 어른들은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하는 가정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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