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

[북리뷰] 한강 - 채식주의자

by EYAEYAO 2025. 6. 14.
반응형

평범한 여성의 '고기 거부'가 불러온 균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식습관 변화처럼 보이지만, 이는 그녀의 내면에서 일어난 급진적인 변화와 저항의 발현이었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채식'이라는 행위가 개인, 가족, 사회 전체에 어떤 균열과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세 개의 연작 중편을 통해 보여준다. 

첫 번째 이야기인 <채식주의자>는 남편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평범하고 조용하며 특별한 욕망이 없던 아내 영혜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단지 "고기가 싫다."라고 말하며 반복적으로 악몽에 시달린다.

"꿈을 꾸었어요. 끔찍한 피비린내 나는 꿈을."

 

남편은 아내의 변화에 불쾌함을 느끼고, 이를 고치기 위해 가족을 동원한다. 아버지는 식사 자리에서 영혜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다 그녀가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첫 편은 평범함을 강요하는 가족과 사회, 그 억압에 무언으로 저항하는 여성의 서사로 요약된다.

 

두 번째 이야기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인 예술가의 시점으로, 그가 영혜의 몸에 집착하며 그녀의 신체를 예술 매체로 삼으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는 영혜의 몸에 몽고반점 문양을 그려 넣고, 그녀와의 행위 예술을 영상으로 남긴다. 이 장면에서 영혜는 마치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듯 "식물로 존재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완전히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로 변화하고자 한다.

 

세 번째 이야기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가족의 붕괴와 자신의 무기력, 그리고 동생의 망가져 가는 정신을 지켜보며, 인혜는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깊은 혼란에 빠진다. 영혜는 끝내 말한다.

"나는 식물이 되고 싶어요. 햇빛을 먹고 살고 싶어요. 나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폭력을 거부하고, 존재 자체가 폭력인 인간성을 버리고자 하는 절실한 욕망. 영혜는 결국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정신병원에서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가기를 꿈꾸며 소멸해 간다.

 

육체에 새겨진 폭력, 침묵의 해방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을 넘어, 몸과 사회, 폭력과 저항의 복합적 구조를 탐구한다. 영혜는 말보다 몸으로 저항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가부장적 사회, 일반적 성적 욕망, 가족이라는 체제에 침묵으로 맞서며 자신을 인간으로서 해체하고자 한다. 그녀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 깊은 곳에서 살아온 억압과 폭력의 흔적이 끓어 오른 결과이다.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어. 내가 죽는 건 내 안의 짐승을 없애고 싶어서였어."

 

이 말은 그녀가 자신 안에 내면화된 폭력성마저 제거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순수성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녀는 타인을 해치지 않으려 했지만, 세상은 그녀의 비폭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순수함이 가장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고, 강제 입원과 통제로 되돌아온다. 형부와 인혜는 각각 예술과 현실을 대표하지만, 이들은 모두 영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형부는 그녀를 미적 대상으로 소비하고, 인혜는 지켜보지만 끝내 동성을 돕지 못한다. 그 속에서 영혜는 점점 더 비인간적인 상태로 탈주해 간다. 그녀는 결국 "나는 나무다"라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초월하려 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문학적 도전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여성의 몸에 가해진 억압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본성의 폭력성을 질문한다. 영혜는 육식을 거부함으로써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착취하고 소유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 자체에 반기를 든다. 그것은 곧 생존을 위해 타자를 해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정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녀가 택한 침묵은 수동적인 침묵이 아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 몸으로만 표현하는 가장 강한 형태의 저항이다. 그녀는 인간 사회의 질서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으며, 그것이 미침으로 보였고, 결국 사회는 그녀를 격리하고 통제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타인을 해치지 않고, 욕망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병리화되고 고립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영혜는 말 그대로 인간이기를 그만둔다. 그녀는 말하지 않고, 먹지 않으며, 자라기를 선택한다.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죽음과 해방, 소멸과 순수함 사이에 위치한 아름다움과 비극의 결정체이다.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정상성'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경계 밖에 선 자를 문학의 언어로 응시하는 작품이이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이 믿는 정상은, 정말 정상인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