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한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성애적인 질서에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아들, 남편, 아버지, 국민 등 여러 가지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남성문화는 남성들끼리 우정을 나누고 단결하는 강력한 남성동성문화적 특성을 가진다. 남성동성문화는 동성 간에 서로를 즐겁게 하고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지만 강력한 동성애혐오에 기초한다. 한편 신자유주의의 전지구화, 다품종 소량 생산, 유연 생산, 소비 사회의 전면화 등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노동을 통해 가부장과 국민의 지위를 독점하던 남성의 위치를 흔들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규범적 남성성은 위기에 처하게 되고 새로운 남성성이 출현할 가능성을 낳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이버 마초와 루저 문화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위기의 남성과 남성문화
남성의 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남성우월주의의 시대에서 남녀평등을 지나 이제는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항의한다. 사회 곳곳에서 여성이 남성을 추월하고 있고 남성이 도태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남성의 위기는 아버지의 위기로 불리기도 한다. 아버지의 존재는 밖에서 죽어라 일하고 돈을 벌어오지만 집안에서는 전혀 존재감이 없다. 육아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엄마가 다 책임지면서 자식과 소통하고 갈등하며 또 관계를 만드는 한국사회에서 아버지란 부재하거나 낯설고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고전적인 성별 분업과 고정관념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공고한 고정관념 속에서도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여성의 생물학적 성 반대편에 있으면서 권력을 누리고 여성을 지배하던 고전적인 이미지로는 더 이상 해명되지 않는다. 한국의 남성문화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한국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
우리가 흔히 남자라고 말하면 남성 성기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을 지칭한다. 그러나 남성 성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바로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성 성기에 걸맞다고 여겨지는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남자다움이라고 하는 남자로서의 태도와 성적 지향성을 갖춰야 한다. 결국 남자란 남자의 몸을 가지고, 이성의 몸에 다가서는, 이성애자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성애 질서에 기반을 둔 남자에게 배분되는 여러 가지 역할 중 아들이라는 역할은 한국의 남성성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아들로 태어나서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남자의 가장 큰 역할이자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아들에게는 ‘유일한 상속자’라는 어마어마한 상징적 지위가 부여되고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권위를 승인한다. 그러나 ‘유일한 상속자’로서 다음 상속자를 생산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크며 결혼을 해서 대를 이어야 아들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아들에 이어 남자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역할은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은 지극히 경제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가족관계에서 남자의 권위는 대부분 ‘밥을 벌어다 주는 사람’, 즉 가장이라는 위치에서 나오며 이에 비해 남편과 아버지의 자리는 대단히 협소하다.
4. 한국의 남성문화와 남성동성사회
여성과 성을 매개체로 형성되는 것이 남성동성사회다. 군대나 회사와 같은 남성동성사회는 대단히 에로틱한 공간이며 몸을 통해서 서로의 에너지를 활력화하는 공간이다. 이 동성집단은 대단히 에로틱한 공간이지만 성행위나 둘만의 배타적인 애정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남성동성사회는 호모소셜(homosocial)하고 호모에로틱(homoerotic) 하지지만 호모섹슈얼(homosexual)한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성과 여성은 남성동성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패막이자 남자와 남자를 이어주는 가장 확실한 매개체이다.
5. 남성성과 능동성, 그리고 자유
남성동성사회는 여성적인 것을 배격하고 남성성을 보존함으로써 남성 간 유대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남성동성사회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며 남녀 간 사랑이 아니라 남성들 간 우애를 더욱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유를 가진 자만이 사람이며 남성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자유의 핵심은 능동성이며 남자의 능동성이란 결코 제거되거나 상처받아서는 안 되는 절대적 가치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의 남자들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자신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스스로를 무장할 수 없는 자, 그런 힘을 가지지 않은 자는 남성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은 남편에게 매인 존재이고 또한 욕망을 따르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게 인간의 고귀한 가치인 자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근거였다.
6. 남성성의 위기와 ‘루저’ 문화
과거에 여성의 영역은 ‘경쟁’과는 상관없는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 제한되었다. 따라서 남성들은 여성을 삶의 그 어떤 영역에서도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쟁’ 혹은 ‘겨룸’이 지배하는 정치와 같은 공적 영역은 온전히 남성들만의 몫이었으며 이 공적 영역에서 남성들은 스스로를 두드러지게 내보이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남자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남성들이 여성을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는 여성들이 전통적인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던 곳에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남자들이 여성들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당황스러움과 적대감인 이유는 역사적으로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고 열등하다고 생각되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데서 기인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으로 근대적 성별 분업관계가 붕괴하고 가장으로서 남성의 위치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경쟁에서 탈락한 남성들은 자신들이 우리 사회에서 ‘루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7. 젠더 질서의 위기와 새로운 남성성의 모색
전통적인 규범적 남성성과 스스로 거리를 두고 남자들의 금기어였던 ‘평등’과 ‘공평’을 말하는 남자들이 있는 반면 이들과는 정반대로 여성에 대한 적대와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이버 마초들이 등장하게 됐다. 사이버 마초는 여성의 욕망을 충족해 주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여성들에 대한 적대와 공격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여성들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들의 욕망이 애초에 헛되고 허황된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을 공격하는 것을 통해서 능동성과 수동성을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으로 재기입해 남성으로서 자신의 능동성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이것을 토해 ‘평등’에 기반을 둔 남성동성사회를 사이버상에서 만이라도 상상적으로 재건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사이버 마초의 출현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한국의 남성 문화였던 남성동성문화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다수가 루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게 변주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8. 새로운 남성성 출현을 기대하며
남성들의 지위하락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남성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비교해야 한다. 노동의 여성화가 빈곤의 여성화와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성들의 지위 하락이 여성들의 지위 상승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남성들이 겪고 있는 위기는 노동이 몰락하면서 남성들이 나라의 ‘주인 됨’, 즉 시민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남성의 몰락이 아니라 노동의 몰락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성별 구도’만을 통해서는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었다. 젠더 질서는 ‘전통적인 성별 구분보다 자본과 학력, 기술 등 개인이 가진 자원에 따라 젠더 범주가 유연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즐기고 정체성을 가지는 여성들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남성들 역시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즐기고 정체성을 가지는 남성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남성 문화에 균열을 내고 있으며, 다른 남성성의 출현을 보여주고 있다.
9. 결론
남성성의 위기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인 ‘여성 혐오’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으로 가장으로서 남성의 위치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경쟁에서 탈락한 남성들은 자신들이 우리 사회에서 ‘루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과거 남성들은 여성을 삶의 그 어떤 영역에서도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남자들이 여성들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당황스러움과 적대감인 이유는 역사적으로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고 열등하다고 생각되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데서 기인한다. 특히 취업, 결혼 등으로 미래가 불안한 젊은 남성들이 지위가 향상되고 수가 늘어나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 등에게 혐오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계속된 경기 불황뿐 아니라 다문화, 여성 지위 향상 등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약자’라고 생각하면서 과하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는 것 같다. 여성 혐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억눌린 분노와 불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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