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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ology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혁명

by EYAEYAO 2024.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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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과학적 작업은 사변 철학 및 모든 철학적 형태의 사고로부터 단절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유럽의 산업 노동 계급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심과 헌신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작동에 대한 그의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적 접근 : 역사 유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적 관점은 역사 유물론이라고 불린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구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 사상이나 이상에 의해 사회의 역사적 발전이 추동된다는 관념론에 반대했음을 의미한다. 대신에 마르크스는 한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이나 이상은 지배적인 삶의 방식, 구체적으로 그 사회의 생산 양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절대 군주가 통치하던 시대에는 왕과 왕비가 '신성한 통치권'을 갖는다는 사상이 지배적이라도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하지만 자유시장자본주의라고 하는 우리 시대에는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주권자 개인의 사상이 지배적이다. 마르크스는 한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은 곧 지배하는 집단의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역사 유물론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함께 삶을 생산하는 방식에 주된 관심을 가진다. 

 

생산양식의 교체 : 성공적인 거대이론?

마르크스는 인간 사회의 역사적 발전은 순전히 의의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대의 과거에는 소규모의 인간 집단이 발전된 소유 체계 없이 존재했다. 대신에 획득된 모든 자원은 공동으로 소유되었으며 계급 분할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원시 공삱우의 형태라고 불렀다. 집단의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기존의 생산 양식이 적합하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생산 양식이 출현했다. 이번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경우와 같이 사적 소유를 어느 정도 갖춘 수준이었다.

이로부터 정착 농업과 봉건적 소유 관계에 기반을 두는 사회가 발전했다. 유럽의 봉건주의 체계는 지주, 땅을 가지지 못한 소농 그리고 소작농 사이의 계급 분하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들 후자는 생존을 위해 지주 밑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봉건적 생산 양식도 생산력의 한계에 도달했고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16세기 최초의 자본가들은 작업장과 제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1789년의 프랑스 혁명 무렵에 이들은 역사의 혁명적 힘이 될 수 있을 만큼 많고 강력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계급 대립은 매우 단순해져 사회가 두 개의 거대한 진영으로 분영된다. 브루주아와 노동자가 그들이다. 자본주의 혁명은 전통적인 봉건적 생산의 한계를 부수었다. 보다 엄격한 규율과 긴 노동 시간이 요구되어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이윤을 뽑아낼 수 있었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의 혁명적 전환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해 가열찬 설명을 제시했다. 초기 1백 년 동안 자본주의는 '과거의 모든 세대를 합친 것보다 더 크고 더 거대한 생산력을 창출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산력은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와 그에 따른 산업 노동 인구의 필연적이고 고질적인 소외로 달성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자체도 봉건제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생산 양식, 즉 공산주의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이 공산주의는 착취당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자각하고 계급 의식이 고양된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됨으로써 도래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하에서 사적 소유는 철폐되고 순수하고 공동의 사회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원시 공산주의와 달리 현대적 공산주의는 고도의 생산력을 갖춘 산업 시스템을 자본주의로부터 물려받아 유지하게 된다. 이는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라는 공산주의적 원칙을 이행할 수 있는 인간적이며 정교한 형태의 진전된 공동적 삶을 산출할 것이다.

 

평가

마르크스에게 산업주의 이론 그 자체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산업 발전은 산업가를 요구했고 이들은 결국 자본주의 기업가였다. 산업 체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소수에게 유리하고 다수에게 불리한 새로운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컴퓨터, 로봇 그리고 인터넷이 연결된 공장, 사무실이 난데없이 생겨난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는데 유용하다. 이것들은 합의가 아니라 갈등으로부터 유래한 적대적 사회관계의 산물이다.

마르크스는 또한 거대 이론화가 유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은 엄청난 양의 역사적 사실들을 일반적인 수준의 얼개 속에 배치하여 쉽게 이해시킨다는 점에서 유익히다. 많은 사회 과학자들이 이러한 틀을 확장하고 정교화하고 비판하며 작업해 왔다. 마르크스 이론에 결점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사회학자들은 그러한 결함을 발견하는 것이 사회학 전체에 매우 생산적이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작업은 거대 이론이 갖고 있는 주된 문제점을 노정하기도 한다. 경험적 검증의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정립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정립이 틀렸음을 명백하게 입증하고자 한다면 어떤 것을 찾아야 할 것인가? '공산당 선언' 출판 이후 160년이 지난 후에도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이론의 중심적인 예측이 잘못되었음을 보여 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다른 측면들 또한 잘못된 것임을 의미하는가? 일반의 역사 유물론적 접근은 어떠한가? 이것 또한 심각한 결함을 가진 것인가?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바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사상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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