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인생의 궤적
[안나 카레리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는 작품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는 문장으로, 소설은 안나 카레리나와 콘스탄틴 레빈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러시아 상류사회의 규범과 도덕,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양상을 대비적으로 그려낸다.
소설은 스테판(스티바) 오블론스키 가정의 위기로 시작된다. 그는 아내 달리와의 관계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가정의 평화가 깨진다. 이때 스테판의 여동생인 안나 카레리나가 모스크바로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안나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고위 관리인 안렉세이 카레린과 결혼한 여성으로 상류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위에 있었지만 그 안에서 점차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다 안나는 기차역에서 젊고 매력적인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고, 두 사람은 서로 강하게 이끌린다. 이 만남은 안나의 삶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다. 브론스키 역시 안나에게 깊이 빠져들고 이들의 관계를 빠르게 발전한다.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이에요. 나 자신보다도요."
- 안나,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고백하며
안나는 결국 남편 카레린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고, 상류사회의서의 지위를 잃는 대가를 치른다. 그녀는 아들 세료자와의 관계를 단절당하고 브론스키와 유럽을 떠돌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애정이 식고 있다고 느끼며 끊임없이 불안을 호소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그녀는 점점 감정적으로 불안정해진다.
또 다른 인물 레빈은 귀족 출신 지주로 도시에 속하지 않은 안정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는 키티 셰체르바차야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브론스키에게 호감을 보이면서 거절당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키티는 레빈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레빈은 농촌에서의 삶과 육체노동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나는 밤마다 되묻는다."
레빈은 신에 대한 회의, 삶의 목적에 대한 고민 속에서 번민하지만 가족과의 삶에서 점차 자신만의 방식을 정립해 나간다. 그의 이야기는 안나의 비극적인 삶과는 달리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한편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갈등, 사회적 배제, 사랑의 불확실성 속에서 점점 파국으로 향한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점점 극단적인 감정 상태에 빠지게 된다. 끝내 안나는 기차역으로 향하고 열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작품의 시작과 끝이 모두 '기차역'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상징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인간 내면의 균열과 사회적 질서의 압력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리나]를 통해 감정의 충동과 사회의 도덕, 개인의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고 묘사한다. 안나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느끼고자 했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브론스키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안나가 기대한 절대적인 구원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브론스키는 현실로 돌아가려 하고, 안나는 계속해서 사랑의 강도를 시험하며 관계에 균열을 만든다.
"그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나는 그에게 짐이야."
안나의 불안은 점점 현실감각을 마비시키며, 그녀를 고립된 내면으로 몰아넣는다. 그녀는 사회적으로도 단절되고, 가정도 잃었으며 사랑만을 마지막 지점으로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 흔들릴 때 그녀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다. 레빈의 이야기는 이러한 한나의 이야기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그는 세속적 성공보다는 내면의 정직함, 노동의 가치를 탐색하며 진정한 삶의 조건을 묻는다. 레빈 역시 방황하지만 끝내 삶의 조용한 윤곽 속으로 자신을 위치시킨다.
삶, 정답이 아닌 균형을 향한 모색
[안나 카레리나]는 인간이 처한 복잡한 감정, 사회적 질서, 삶의 의미를 정면으로 다룬다. 톨스토이는 어느 한쪽의 선택을 찬양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각의 인물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안나는 감정을 따르지만 그 결과로 파국을 맞는다. 레빈은 끊임없이 회의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구축한다. 안나의 선택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승리도, 도덕의 패배도 아닌 이유는 그 끝에 해석보다 더 깊은 여운이 있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그 무게를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안나 카레리나] 속 인물들은 도덕적 기준으로 단순히 판단될 수 없는 복잡한 내면을 지니고 있다. 사랑과 자유, 책임과 고립의 경계에서 안나와 레빈이라는 두 인물의 궤적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리뷰] 괴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3) | 2025.06.20 |
---|---|
[북리뷰] 밀란 쿤데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 | 2025.06.19 |
[북리뷰] 손원평 - 아몬드 (1) | 2025.06.18 |
[북리뷰]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3) | 2025.06.17 |
[북리뷰] 헤르만 헤세 - 데미안 (1) | 2025.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