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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다시 읽기

야쿠마루 가쿠 [돌이킬 수 없는 약속] 리뷰 : 일본 추리 소설

by EYAEYAO 2025.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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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일본 추리소설의 깊이와 인간 감정의 진폭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복수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사건과 인물 간의 미묘한 긴장감이 섬세하게 얽히며, 단순한 범죄 소설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추리소설을 자주 접해본 사람도 이 작품의 결말 앞에서는 멍해질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이다.

미스터리가 중심인 구성과 서사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은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고,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시간과 기억, 그리고 감정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현재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과거에 있었던 비극 사이의 연관성이 하나씩 밝혀질 때, 독자는 마치 작은 퍼즐 조각을 맞추는 듯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인물 간 대사보다는 그들이 품고 있는 침묵 속 의미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는 전형적인 일본 미스터리 문학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책에서 등장하는 형사는 단순히 증거를 쫓기보다, 사람의 표정과 말투, 침묵을 읽어내는 데 주력한다. 그 수사의 방식은 읽는 사람에게도 일종의 ‘정서적 추리’를 유도하며 감정적 몰입을 불러일으킨다. 플롯은 군더더기 없이 구성되었지만, 단순하고 빠르진 않다. 오히려 느릿한 전개 속에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이 곧 인물들의 상처를 들춰내는 여정이 되면서, 독자 역시 감정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감정 중심 서사는 이 작품을 ‘미스터리 이상의 이야기’로 만든다.

복수라는 테마가 이끄는 감정의 파열음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서 복수는 단지 감정적 대응이 아닌, 삶의 전부가 된다. 주인공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현재를 잃은 인물이다. 그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내면은 멈춰 있다.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은 조용하지만 점점 짙어진다. 읽는 이는 그의 선택에 공감하면서도, 과연 그가 선택한 길이 옳은가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게 된다. 복수라는 감정은 이 소설에서 너무도 현실적이다. 이상적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매우 인간적인 갈등과 모순을 동반한다.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고통과 망설임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게 한다.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알고 보니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가해자였다는 설정은 매우 현실적이고 무겁다. 야쿠마루 가쿠는 단순히 복수라는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선택하는 사람의 마음, 그 감정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는 고통까지 모두 보여준다. 복수에 대한 묘사는 격렬하지 않지만, 읽는 이를 정서적으로 철저히 무너뜨린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한 인간의 고백처럼 느껴진다.

일본소설 특유의 감정 밀도와 정적 흐름

이 작품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일본 소설 특유의 '여백의 미'에 있다. 장면 전환이나 인물의 대사에 있어서도 과장되지 않으며, 오히려 생략된 감정이 여운을 만든다. 특히 도시의 평범한 풍경이나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강한 대비를 이루며, 독자에게 묘한 불안감을 전달한다.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긴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정보가 전달된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사건 중심의 한국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 여유롭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인물의 마음은 끓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은 선과 악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누구도 완전히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더욱 현실적이고, 또 진실하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고, 또 누군가를 상처 입히며 살아간다. 이런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 이 소설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준다. 감정의 밀도가 높은 장면들은 한 페이지, 한 문단을 넘길 때마다 오래도록 머문다. 일본 문학이 가진 정적과 그 흐름 속에서 이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한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미스터리의 틀 속에 인간의 죄의식, 용서, 복수라는 복잡한 주제를 담아낸 작품이다. 단순한 반전이나 충격보다, 감정선과 여운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깊이 있는 추리소설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긴 여운을 남기는 한 권의 소설을 찾고 있다면 지금 바로 이 작품을 펼쳐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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