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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다시 읽기

김애란 [바깥은 여름] 리뷰 : 줄거리

by EYAEYAO 2025.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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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 바깥은 여름

1. 익숙한 일상이 무너졌을 때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삶의 한가운데에서 불쑥 찾아온 상실과 슬픔을 마주하는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작가가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사회적 관찰과 유머 대신, 이 책에서는 이별과 부재의 감정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목처럼 '바깥은 여름'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내면은 사계절 중 어느 추운 겨울에 머물러 있다.

[바깥은 여름]은 가족을 잃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던 그녀는 한순간의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잃는다. 사고 이후의 삶은 극적인 반전이나 감정의 폭발이 없다. 오히려 평소처럼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그녀가 겪는 공허함과 무력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작가는 그 공백을 조용히 드러낸다.

"사는 것보다 죽지 않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주인공의 심정이 날카롭게 전달된다. 죽음은 단순히 누군가의 떠남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일상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사건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감정을 과장하거나 감성적으로 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행동, 짧은 대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여운이 느껴지도록 만든다.

 

2. 관계의 끝에서 마주하는 침묵

[바깥은 여름]처럼 다른 6편의 단편들도 비슷한 온도를 지닌다. [입동]에서는 감정이 식어버린 연인의 관계가 조용히 막을 내리는 순간이 담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결국 다른 계절에 서 있었던 두 사람은 아무런 소란도 없이 이별을 향해 나아간다. 애써 이별을 부정하려는 여자와, 이미 정리된 감정을 애써 말로 표현하지 않는 남자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는 서로의 옆자리에 있지만 같은 계절을 살고 있지는 않았다."

 

김애란 작가는 이처럼 특유의 간결한 문장 안에 복잡한 감정을 담는다. [바깥은 여름]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체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때로는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들은 말대신 조금 더 천천히 걷고, 말끝을 흐리고, 무언가를 고르다 말고 돌아선다. 그 행동들이 때로는 감정의 무게를 대신 전달한다. 작가는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그저 곁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노란 집]에서는 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이 담긴다. 아버지와의 갈등, 불편한 기억, 그리고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거리감 속에서도, 주인공은 끝까지 함께하며 그 시간을 버틴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내가 누군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문장은 이 책이 품고 있는 애도의 태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풍경의 쓸모]와 같은 단편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 혹은 누군가 나를 기억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 때로는 위로가 된다. 그것은 직접적인 위로나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 작고 조용한 위안이 어떤 위력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다.

 

3. 상실 이후에서 삶은 계속된다

작가는 설명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며 감정의 언어를 조용하고 세밀하게 표현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명확히 말하지는 않지만 그 사건 이후 인물들이 보이는 작은 변화를 통해 상실의 크기를 짐작하게 된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은 상실과 이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읽는 이를 짓누르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슬픔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을 끄고, 길을 나선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말하지 않고 지나쳤던 일을, 누군가는 말로도 못 꺼낸 기억을, 나는 책 속에서 마주쳤다"

 

후회, 부끄러움, 외로움, 무력감 등 우리가 쉽게 꺼내기 힘든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누군가 한 번쯤 겪었지만 말하지 않았던 감정을 조용히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어떤 답도 주지 않지만 이러한 감정들을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라 모두 겪는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누군가에게는 공감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오랜 침묵 끝에 나올 수 있는 첫마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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