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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다시 읽기

김연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줄거리 리뷰

by EYAEYAO 2025.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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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1. 어디까지가 나였고, 어디부터가 당신이었을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김연수 작가가 2011년에 발표한 다섯 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전체적인 배경은 분단 이후의 한반도와 독일 통일 전후의 베를린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내면을 따라간다. 

이 책의 인물들은 모두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고향을 떠나 이방인으로서, 또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걸친 인물로 정체성과 기억 사이에서 불안정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제목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실종된 옛 연인을 찾아 베를린을 방황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이질적인 도시의 풍경과 상실의 감정을 겹쳐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녀가 있었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빈자리 덕분에 나는 그녀를 기억할 수 있었다."

 

이는 상실과 기억이 단절이 아닌 연결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가 사라진 후에야 그 사람의 존재를 더욱 크게 느낀다. 김연수 작가는 '말하지 않은 감정들'이 공간 속에 스며드는 방식을 조용하고 깊이 있게 짚어낸다.

 

2. 도시라는 배경, 혹은 감정의 반사판

김연수 작가의 작품 속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심리적 장치이자 감정의 거울처럼 등장한다. 베를린은 국경과 이념,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도시로,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은유적으로 반영하는 공간이 된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낯설고 차가운 장소이지만, 동시에 인물들이 가장 솔직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익명의 도시 속에서야 비로소 진심을 꺼낼 수 있는 사람들, 이것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공통점이다.

"도시는 너무 조용해서 내 마음속이 들릴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말이 되어버리는 공간이었다."

 

익숙한 얼굴이 없는 거리, 목적 없이 걷는 골목,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인물들은 과거의 선택과 감정을 되짚어간다. 김연수 작가는 도시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무는 감정의 잔재를 포착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3. 사랑을 말하지 못한 사람들, 잊지 못한 시간

이 책의 단편들 속 사랑은 대부분 이미 지나가버린, 그러나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등장한다. [달로 간 코미디언]이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과 같은 작품들에서는 말하지 못한 감정과 관계의 유효기간이 중심에 놓인다. 특히 작가는 사랑의 실패를 다루면서도 낭만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이별과 상실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감정의 '과정'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의 움직임을 기록한 심리 지도처럼 읽히기도 한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가거나, 혹은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그러나 그 감정은 누구에게 말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인물들은 대부분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며, 말 대신 시차와 공간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4.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낯익은 타인으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분단, 사랑, 상실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익숙한 것 속에서 낯선 감정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읽는 이를 이끈다. 책 제목처럼 우리는 종종 가까운 사람조차도 '타인'처럼 느끼며 살아간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던 관계는 어느 순간 어긋나기도 하고, 때때로 서로를 잃은 채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사람처럼 살아간다. 이 책은 그 감정의 어긋남을 비난하지 않고,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것이 인생이라는 듯 담담하게 그려내며, 그로 인해 고요한 공감을 남긴다.

김연수 작가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통해 감정과 도시, 기억과 현재 사이의 미묘한 틈을 묘사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실종, 한 도시의 분단, 그리고 한 시절의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말해지지 못한 감정들을 기록한다. 정치적으로 분단된 도시에서 감정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만나는 방식은 역사와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낯익은 타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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