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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ology

페미니즘 이론이란?

by EYAEYAO 2024.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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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그리고 남성 주류(malestream) 사회학

사회학의 창시자로 수용된 사람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의 상이한 경험이나 젠더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뒤르켐의 저작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종종 논의되었지만 사회학적으로 일관된 방식을 갖추지는 못했다. 뒤르켐은 남성의 거의 전적으로 사회의 산물임에 반해 여성은 대체로 자연의 산물이라며 이것이 정체성, 취향, 성향의 상이한 기초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오늘날의 사회학자들은 여성의 정체성을 부당하게 본질화하는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뒤르켐과 크게 다르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및 지위 상의 차이는 다른 분할들, 특히 계급 분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의 초기적 형태인 원시 공산주의에서는 젠더 구분도 계급 구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은 계급 분할이 등장하면서 생긴 것이다. 여성은 결혼 제도를 통해 남성에게 소유되는 '사적 재산'의 한 유형으로 여겨졌다. 여성이 속박의 상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본주의가 전복되어 계급 구분이 소멸될 때에만 열리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이와 같은 분석을 수용하는 사회학자는 거의 없다. 계급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구분을 빚어내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 종족성이나 문화적 배경 역시 그러한 요소들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소수 종족 집단에 속한 여성은 다수를 차지하는 종족에 속한 여성보다 자신과 같은 종족에 속한 남성과 공유하는 것이 더 많다. 최근 몇 년 간에는 교차성(계급 젠더, 종족성 등의 구분이 합하거나 교차하여 복잡한 형태의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교차성은 계급 분석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이론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젠더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보다 확립된 형태의 이론적 사고를 위해 기반으로 할 만한 것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고전 사회학은 사회학 이론에 어려운 문제를 물려주었다. 일반적인 범주로서 '젠더'가 어떤 방식으로 기존의 사회학 이론에 도입되어야 할 것인가? 과거의 많은 사회학이 여성을 무시하거나 철지난 가정과 젠더 관계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를 가지고 작업했다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반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젠더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연구를 사회학에 도입하는 것이 젠더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젠더 연구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성의 형성이 변화하는 것까지도 탐구했으며, 퀴어 이론(queer theory)의 등장과 함께 젠더 개념 자체의 불안정성이 노출되었다.

 

페미니즘 이론

1960년~70년대의 여성 운동은 사회에 속한 여성의 불평등한 위치와 대결하고자 했던 수많은 입법적 변화로 이어졌다. 페미니즘 이론은 남성 중심적 혹은 남성 주류의 사회학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남성의 경험으로부터 일반적 결론을 도출하는 남성 편향의 사회학적 이론화를 수반했다. 여성의 경험을 포착할 수 없게 설계된 연구 방법, 여성에 지향된 가정이나 가족의 사적 영역을 지나쳐 버리고 공적 영역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회학의 주제 자체등이 이러한 편향에 해당된다. 그 당시 페미니즘의 구호 가운데 하나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였으며 이전에 사적인 문제로 여겼던 것들이 사회학의 정당한 주제가 되었다.

남성 주류의 사회학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은 내용과 방법론 전체에 대한 급진적인 재고를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남성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도 사회를 본다는 것을 넘어 이 세계가 근본적으로 젠더화되어 있다고 봐야 할 필요를 인지하는 것이다(Abbott et al. 2005: 3).

어느 페미니스트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세계에 대한 만족스런 분석을 위해 젠더의 중심성을 강조하면서, 분과의 핵심을 형성하는 중심 문제들을 포함해 사회학 전체의 포괄적인 재구축을 요청했다.

사회학이 이러한 방향으로 얼마나 변화했는가는 논쟁으로 남아 있다. 혹자는 사회학이 '페미니즘 이전의 양식'에 계속 머물러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분과 자체를 변화시키겠다는 페미니즘의 약속을 사회학에서 '여전히 누락된 혁명'으로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젠더의 문제를 어떻게 이론화 해야 하는가를 두고 페미니즘의 관점들 사이에 수많은 이견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페미니즘 이론은 초기의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이중-체계 및 비판적 페미니즘을 거쳐 포스트모던 후기 구조주의적 페미니즘과 흑인 페미니즘 및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까지 이른다. 페미니즘 이론이 다양하기 때문에 단일하거나 통합된 상태의 '사회에 대한 여성주의 이론'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식이 섹스 및 젠더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역압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성의 위치에 대한 이론적 설명들은 간혹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급진주의 페미니즘에서는 가부장제가 억압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보지만, 이중-체계 이론가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결합해 남성의 지배를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흑인 페미니즘은 인종, 인종주의, 종족성이 페미니즘 이론화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철저히 다른 배경과 생활 조건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성이 본질적으로 유사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는 초기의 이론들을 비판한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고 상이한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세계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들은 종종 남성 주류의 사회학이 지식의 '젠더화된' 성격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면서 남성의 특수한 경험으로부터 소위 보편적인 결론을 도출해 왔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관습적으로 남성들이 권력과 권위를 가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특권적인 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투자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젠더화된 지식은 기존의 사회적 배치를 영속화시키고 계속되는 남성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불가결한 힘이 된다.

하지만 도나 해러웨이, 앨렌 식수스, 주디스 버틀러와 같이 포스트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던한 사유로부터 영향을 받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남성 또는 여성을 자신들만의 고유한 이해관계와 특성을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집단이라고 상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젠더 그 자체는 고정된 범주나 본질이 아니며,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보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로 드러나는 유동적인 어떤 것이다. 만약 버틀러의 주장과 같이 젠더가 '행해진'또는 수행된 무엇이라면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 젠더는 '행하지 않을'수 있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젠더화된 존재에 본질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젠더'는 고정된 생물학적 토대 없이 끊임없는 사회적 구성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인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은 페미니즘 사상이 얼마나 긴 여정을 지나왔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혹자는 이러한 물음이 불평등에 맞서거나,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여성들의 물질적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데에는 부차적이라고 보았다. 라만(Rahman)과 잭슨(Jackson)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오늘날 적나라하고 악화하는 불평등으로 특징되는 전 지구적 맥락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지역적 및 전 지구적 착취의 교차 속에서 여성이 가장 불리한 경우가 많다. … 여성들 사이의 차이는 그저 문화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화된 인종주의 노예의 세기로부터의 유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지역과 세계의 노동 분할 등으로부터 파생되는 현실의 물리적 불평등에서 발견된다.

페미니즘 이론은 1970년대 이후로 크게 발전했으며, 현재 논의되는 주제는 페미니즘 운동의 '제2차 여권 운동'에서 등장한 유물론적 페미니즘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달라진 관점은 페미니즘의 사유가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확장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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